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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괴물 (Monster, 2023) – “우리가 괴물을 만든다, 진실은 시선 속에 있다”

by 보부상C 2025. 4. 3.

괴물 (Monster, 2023) – “우리가 괴물을 만든다, 진실은 시선 속에 있다” 관련 사진

1. 괴물 전체 줄거리 (스포일러 포함)

영화 〈괴물〉은 겉으로 보기엔 아주 단순한 이야기처럼 시작된다. 싱글맘 사오리는 아들 미나토의 이상 행동을 눈치챈다. “우리 선생님, 나한테 돼지 뇌가 들어있대.” 놀라운 말에 사오리는 아들의 학교에 찾아가고, 담임인 호리 선생이 폭언과 체벌을 했다고 믿는다.

 

학교는 처음엔 책임을 회피하다 여론이 악화되자 호리를 공개 사과시키고, 그는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관객은 이 모든 과정을 사오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호리가 분명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영화는 그 시점에서 멈추지 않는다. 두 번째 파트에서는, 같은 사건이 호리 선생의 시선으로 다시 펼쳐진다. 그는 오히려 아이들과 교감하려 노력하던 교사였고, 폭언이나 체벌은 없었다. 문제의 중심에 있던 미나토는 또 다른 학생 요리를 괴롭히고 있었고, 호리는 그 관계를 중재하려다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그러면서 밝혀지는 사실: 미나토와 요리는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다. 서로를 누구보다 아끼고 의지하던 소중한 존재였다. 다만 두 사람의 관계는 쉽게 정의내릴 수 없고, 아이들 스스로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기에 때론 폭력처럼, 때론 거짓말처럼 튀어나온다.

 

세 번째 파트는 요리의 시선이다. 그는 학교에서 ‘이상한 아이’로 통한다. 말수가 적고, 관심사도 다르고, 친구도 없다. 하지만 미나토만큼은 요리를 이해해주는 단 한 사람이었다. 서로는 점점 더 깊이 연결되어 가고, 비밀 장소에서 둘만의 시간을 보내며 조용한 행복을 나눈다.그러나 어른들은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른다. 둘의 관계는 곧잘 ‘문제행동’, ‘괴롭힘’, ‘이상한 우정’으로 오해받는다. 그리고 그 오해는 결국 사건으로 이어진다. 호리는 쫓겨나고, 요리는 가출하고, 미나토는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미나토가 추락사할 뻔한 장면과, 그걸 본 요리가 어른들에게 거짓 진술을 한 이유가 밝혀질 때다. 요리는 친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괴물이다"라고 말한다.

2. 주제 – 우리는 언제 괴물이 되는가

〈괴물〉은 ‘진실은 시선에 따라 달라진다’는 메시지를 가장 섬세하고 충격적으로 구현한 영화다. 이 영화는 다음의 질문을 끝없이 되묻는다:

  • 괴물은 실재하는가?
  • 아니면, 괴물은 오해와 편견, 권력의 시선에서 탄생하는가?
  • 우리는 얼마나 쉽게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어버리는가?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모든 행동이 규범에 맞아야 하고, 설명 가능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납득돼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때로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은 충돌하거나 왜곡되며, 어른들 눈엔 ‘이상한 행동’으로 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섬뜩한 지점은, 실제로 괴물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괴물을 만들어냈다.

3. 장면과 연출 –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정교한 서사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다층적 내러티브’를 가장 치밀하게 구현했다. 기존 작품들보다 복합적 구조와 감정적 충격이 크며, 각 파트가 끝날 때마다 관객은 지금껏 본 모든 것을 다시 해석해야 한다.

연출의 백미는 세 번째 시선인 ‘요리의 이야기’가 시작되며 이전의 모든 정보들이 완전히 다른 얼굴로 재구성되는 순간이다. 관객은 “나는 진실을 본 줄 알았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오해와 상처를 따라간 것뿐”이라는 강한 자괴와 동시에 슬픔을 느낀다. 또한 이 영화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마지막 OST가 삽입된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그의 음악은 말보다 먼저 슬픔을 자극하고,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 고요하게 흐르는 피아노 선율은 아이들이 진짜 괴물이 아니었다는 걸 조용히 말해주는 듯하다.

4.  괴물은 없다, 단지 우리가 보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영화 〈괴물〉은 끝나는 순간에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의 마음에 남는 건 단순한 여운이 아니라, “나도 괴물을 본 적이 있는가, 혹은 만든 적이 있는가?”라는 통렬한 자기반성이자, 우리가 일상적으로 무심하게 지나쳤던 수많은 순간들에 대한 회고이다. 이 영화는 어떤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 이 작품이 풀어내는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시선이 만들어내는 진실의 변형이다. 처음에는 엄마의 시선, 그다음엔 교사의 시선, 마지막엔 아이의 눈으로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게 된다. 진실은 단 하나가 아니며,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 중 상당수가 누군가의 해석, 두려움, 상처에서 비롯된 '버전들'이라는 것을.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은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라, “나는 괴물이야”라고 한 소년이 스스로를 단죄하는 장면이다. 그 말은 죄를 덮으려는 것이 아니라, 친구를 보호하기 위한 용기이자 체념이었다.

〈괴물〉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편견을 진실이라 믿었는가? 당신의 판단이 누군가를 괴물로 만들지는 않았는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또 하나의 미나토와 요리를 괴물로 만들고 있진 않은가?

이 영화는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다. 감정의 파편들을 남겨두고, 관객 스스로 주워 모으며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 아이들이 웃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그 순간은 하나의 결말이 아닌, 우리 사회를 향한 열린 질문이 된다.

 

괴물은 없었다. 괴물은, 우리가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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