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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더 메뉴 (THE MENU, 2022) - 맛 없는 인생을 먹는 당신에게 ( 더 메뉴 줄거리, 식탁 위의 계급, 햄버거와 예술, 소비의 비극)

by 보부상C 2025. 4. 25.

[영화 감상] 더 메뉴 (THE MENU, 2022) - 맛 없는 인생을 먹는 당신에게 ( 더 메뉴 줄거리, 식탁 위의 계급, 햄버거와 예술, 소비의 비극) 관련 사진

1.스포 포함 줄거리 – 초대받은 자들의 만찬, 그리고 도살

 

한 섬으로 향하는 보트 안. 주인공 마고(안야 테일러 조이)는 남자친구 타일러(니콜라스 홀트)와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셰프 줄리안 슬로윅(랄프 파인즈)이 운영하는 초호화 레스토랑 ‘호손’의 저녁 식사에 참석한다. 레스토랑은 외딴 섬에 위치하고, 모든 식자재는 그곳에서 직접 자급자족하는 폐쇄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공간이다.

손님들은 각기 다른 사회적 지위를 가진 인물들이다. 미식 비평가, 부유한 노부부, 유명 셰프의 팬보이, 영화 배우, 사업가 부부 등. 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진 것은 허영과 위선, 그리고 슬로윅의 요리에 대해 ‘감상’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식사가 거듭될수록 요리는 점점 미친 듯한 퍼포먼스를 동반한다. 셰프는 요리마다 손님들의 죄와 과거를 고발하고, 급기야 레스토랑 직원 중 한 명이 자살하는 장면이 서빙되며 공포는 절정에 달한다. 슬로윅은 이 만찬이 단순한 디너가 아닌 종말의 의식임을 선포하고, 이 식사가 끝날 때 모든 손님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 선언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마고만은 ‘진짜 손님’이 아니다. 그녀는 타일러가 파트너 부족으로 대타로 데려온 인물이며, 셰프 슬로윅은 그녀가 레스토랑의 철학에 동의하지 않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눈치챈다. 결국 마고는 “나를 배불리게 해주는, 사랑을 담은 햄버거”를 주문함으로써 슬로윅의 무너진 열정을 되살리며, 죽음을 면한다. 모든 손님이 불타는 레스토랑 속에서 ‘마시멜로’처럼 타들어갈 때, 마고는 홀로 배를 타고 떠난다.

2022년 화제작 <더 메뉴(The Menu)>는 단순한 스릴러 이상의 울림을 지닌 작품이다. 미식, 예술, 소비, 계급, 인간성이라는 복잡한 주제를 요리 하나에 녹여내며, 그 결과물은 허영으로 가득 찬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해부도가 된다. 이 영화는 마치 정갈하게 차려진 코스 요리처럼 시작되지만, 그 안에는 창작자의 절망, 소비자의 위선, 그리고 살아 있는 인간의 감정이 피와 기름처럼 스며 있다.

'맛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셰프 줄리안 슬로윅의 식탁에 초대된다. 하지만 이 만찬은 단순한 저녁 식사가 아니다. 이것은 처형장이자, 고백의 자리이며, 그리고 셰프의 자아가 무너지는 마지막 퍼포먼스다. 오직 한 사람만이 이 식탁에서 살아남는다. 왜일까? 그녀는 무엇을 먹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을 먹지 못했는가?

2. 초대받은 자들의 만찬, 그리고 도살 – 식탁 위의 계급극

<더 메뉴>는 미식이라는 익숙한 형식을 빌려, 그 안에 낯설고 잔인한 구조를 집어넣는다. 영화의 배경은 완벽히 격리된 섬에 위치한 고급 레스토랑 ‘호손’. 여기서 제공되는 식사는 오직 엄선된 ‘특별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정말 특별한가? 아니다. 그들은 허영과 돈으로 포장된, 감정 없는 소비자일 뿐이다.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손님들—미식 평론가, 배우, 금융가, 상류층 부부—는 모두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도 요리를 감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이 공간에 ‘걸맞은 사람’이라는 착각을 증명받기 위해서다.

주인공 마고는 이들 사이에 속하지 않는다. 그녀는 원래 초대되지 않았고, 파트너 부족으로 급히 대타로 온 인물이다. 그녀는 슬로윅 셰프가 만들어낸 세계관 밖의 존재이며, 이 미식 연극에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이런 설정은 단순한 캐릭터 배치가 아니다. 그것은 "누가 진짜 배고픈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마고는 요리를 평가하거나 해석하지 않는다. 그녀는 진짜 허기를 느낀다. 오직 이 허기만이 셰프 슬로윅에게 ‘요리’라는 개념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

슬로윅은 식사를 통해 손님들의 허영을 낱낱이 해체한다. 코스마다 숨겨진 의미는 점점 날카로워지고, 급기야 요리사가 자신의 죽음을 서빙하는 장면까지 등장한다. 이것은 미식의 절정이 아닌, 예술의 폭발이자 자기 파괴다.

결국 슬로윅은 선언한다. "당신들은 이 음식을 감상할 자격이 없다." 그는 요리를 더 이상 기쁨을 주는 행위로 여기지 않는다. 손님들은 창작자의 진심을 소비하고, 왜곡하고, 무의미하게 만든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만찬은 복수극이자, 창작자가 스스로 만든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불태우는 자멸의 의식이다. 그래서 <더 메뉴>는 무섭다. 공포의 실체는 음식이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위선과 공허다.

3. 햄버거와 예술 – 셰프의 마지막 자존심이 담긴 한 끼

<더 메뉴>의 절정은 폭발적인 불길도, 서스펜스도 아닌, 아주 작고 조용한 순간에서 찾아온다. 그것은 마고가 셰프 슬로윅에게 “그냥 햄버거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셰프는 지금껏 완벽한 요리를 위해 인생을 바쳤다.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요리는 예술 그 자체였고,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 치열함은 결국 독이 되었다. 예술은 감정을 잃고, 완벽주의는 고통이 되었다.

마고의 요청은 그에게 "왜 처음에 요리를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기술을 겨루기 위한 것도, 명성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를 따뜻하게 배부르게 해주고 싶었던, 아주 순수한 시작. 햄버거는 그 기억을 불러온다.

셰프는 마고를 위해 햄버거를 만든다. 그 요리는 지금까지 나왔던 어떤 코스보다도 ‘진짜’다. 이 장면은 마치 창작자가 마지막으로 진심을 담아 무대에 서는 느낌이다. 그리고 마고는 그 음식을 먹고,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 유일한 진심 어린 피드백이다.

이 햄버거 한 조각은 셰프에게 마지막 자존심이자, 회복할 수 없는 과거의 유일한 복원이다. 그는 마고를 보내준다. 그녀는 그 세계를 떠나도 되는 유일한 존재다.

그 순간 셰프는 다시 셰프로서 존재한다. 화려한 코스요리가 아니라, 배고픈 사람을 위해 만든 ‘진짜 한 끼’를 완성한 사람으로서. 그래서 그는 스스로 무너뜨린 세계 속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사라진다.

이 장면이 인상 깊은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구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창작자의 마지막 선택이고, 관객이 아닌 ‘사람’을 위한 마지막 요리다. 마고는 그 음식을 들고 떠난다. 누군가를 위해 만든 요리를 먹고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 햄버거는 단순한 패스트푸드가 아니다. 그것은 예술이 다시 사람을 위해 존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4. 계급과 소비의 비극 – 우리는 무엇을 먹고 있는가?

<더 메뉴>가 남기는 가장 깊은 메시지는 ‘소비’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비하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 채 삼켜버리는가?

레스토랑의 손님들은 모두 고급 음식을 먹는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즐기지 않는다. 분석하고, 비교하고, 사진 찍고, 기록하지만, 맛보지 않는다. 그들은 음식이 아니라 '이미지'를 먹는다.

영화 속 셰프 슬로윅은 그런 소비자들에게 환멸을 느낀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음식이 아닌 상품으로, 혹은 계급의 상징으로 소비하는 사람들. 그들은 감각이 마비되었고, 음식에 대한 애정이 없다. 오직 허세만 있다.

이는 오늘날의 소비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우리는 종종 예술, 음식, 영화, 책 등을 진심으로 느끼기보다 ‘소비하고 기록하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다. “어디에 갔는가”보다 “인스타에 어떻게 올릴까”가 더 중요한 시대. 그런 시대에 슬로윅 같은 창작자는 어디로 가야 할까?

슬로윅은 자신이 만든 세계를 끝장낸다. 손님과 함께 자신도 불태우며, 창작자가 선택한 마지막 방식은 파괴다. 그는 살아남지 않지만, 한 사람만은 남긴다. 진짜로 요리를 먹을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마고다.

마고는 아무것도 포장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저 배고팠다. 그리고 그 욕구가 셰프에게 잊혀진 인간성을 떠올리게 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먹는 것은 허영인가, 생존인가?” “당신이 감상하는 것은 진짜인가, 사회적 과시인가?” 그리고 가장 근본적인 질문. “당신의 인생은 지금 어떤 맛이 나는가?”

결론: 인생이라는 식탁 위에서, 당신은 무엇을 주문할 것인가?

<더 메뉴>는 단순한 풍자극도, 미식 블랙코미디도 아니다. 이 영화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시선을 위해, 소비를 위해, 혹은 그저 허무를 잊기 위해 무언가를 ‘먹고’ 있다.

이 작품은 그 먹는 행위가 과연 진짜 우리를 채우는 것인지, 아니면 점점 우리를 비워가고 있는지를 질문한다.

셰프 슬로윅은 죽었지만, 그는 마지막으로 진짜 음식을 만들었다. 마고는 살아남았고, 그녀는 유일하게 그 음식에 감사를 표했다. 그 작은 진심이, 하나의 생명을 구했고, 하나의 창작자를 해방시켰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이 영화는 묻는다.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삶은 어떤 맛입니까? 그리고 당신은, 오늘 어떤 메뉴를 선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