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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더 파더 (The Father, 2021) - 기억이 사라지려는 순간, 나는 누구인가?

by 보부상C 2025. 4. 6.

더 파더 (The Father, 2021) - 기억이 사라지려는 순간, 나는 누구인가? 관련 사진

1. 더 파더 줄거리 (스포일러 포함)

영화 〈더 파더〉는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앤서니'(앤서니 홉킨스)의 시선을 따라가는 독특한 구조의 심리극이다. 영화는 전통적인 시간의 흐름이나 객관적인 시점이 아닌, 앤서니의 인지 상태에 따라 흐릿하게 뒤엉키는 현실과 기억, 환상 사이를 오간다. 관객은 앤서니의 혼란스러운 인지 경험을 함께 겪으며, 점차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왜곡된 기억인지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진다.

 

앤서니는 딸 앤(올리비아 콜먼)과 함께 살고 있으며, 딸이 집을 떠나 재혼할 계획을 세우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혼란과 분노에 휩싸인다. 간병인이 자주 바뀌고, 딸의 얼굴이 낯선 여자로 바뀌기도 하며, 심지어는 자신의 집이라고 믿는 공간도 낯설게 변해간다. 영화는 이러한 모든 전개를 '치매 환자'의 시선으로 구성함으로써, 단지 병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그 병이 삶의 모든 것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만든다.

 

결국 앤서니는 요양원에 머물게 되고, 딸은 이미 떠난 지 오래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이 장면은 관객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며, 인간이란 존재가 기억과 자아를 잃었을 때 얼마나 취약하고 외로운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2. 존엄과 기억 – 무엇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가?

〈더 파더〉는 단지 치매라는 병을 묘사하는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기억과 자아의 관계, 인간의 존엄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내가 누구인지를 말할 수 있는 건 결국 기억인데, 그 기억들이 하나둘씩 지워질 때,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는가?

 

앤서니는 혼란 속에서도 자신의 고집과 자존심을 지키려 한다. 그는 자꾸만 자신이 여전히 건강하고, 딸의 보호가 필요 없다고 주장하지만, 장면이 바뀔 때마다 그 주장조차 무너지며 혼란에 빠진다. 그는 끊임없이 물건을 잃어버리고, 사람의 얼굴을 혼동하며, 결국은 시간과 공간의 개념마저 잃는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존엄'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인간적이기에 더욱 슬프고 아름답다.

 

영화가 강렬한 것은, 이 모든 혼란을 단지 관찰자가 아닌 '체험자'로서 관객에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이 영화는 치매라는 주제를 통해, 결국 인간 존재의 가장 핵심적인 질문,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인 물음을 던진다. 우리는 나 자신이 점점 사라져가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또한 앤서니가 끝내 붙잡고자 하는 것들이 단지 기억이 아니라, 그 기억 속 관계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딸 앤을 혼동하고, 간병인을 의심하고, 때로는 두려움과 공격성 사이를 오가지만, 그 중심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자리하고 있다. 그 마음은 마지막까지도 명확하다. 기억은 사라지지만, 감정은 끝까지 남는다는 것. 그것이 영화가 던지는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다.

3. 개인 감상평 – 혼란의 한가운데에서 만난 연민과 두려움

〈더 파더〉는 나에게 있어 단순한 영화가 아니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그 구분이 무너질 때의 두려움. 그리고 그 안에서 여전히 존엄을 지키려는 한 인간의 몸부림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을 자아냈다.

 

앤서니 홉킨스의 연기는 이 모든 감정선을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그는 한순간은 위엄 있는 아버지이고, 또 다른 순간은 길 잃은 아이가 된다. 그의 표정, 말투, 눈빛 하나하나가 깊은 잔상을 남긴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엄마를 찾으며 오열하는 모습은, 인간 존재의 가장 깊은 밑바닥을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최근 내가 관심 갖고 있는 "좋은 늙음"과 "좋은 죽음"이라는 주제와도 깊게 맞닿아 있었다. 단지 육체의 건강함이 아닌, 기억과 존엄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존엄마저 위태로워질 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로 남을 수 있을까?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오랫동안 멈춰 서게 되었다.

 

또한 이 영화는 나 자신의 노년뿐만 아니라, 나의 부모와 주변 어른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흔히 놓치고 있는 그들의 혼란, 반복되는 말과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불안과 두려움을 이해하게 된다면, 조금은 더 따뜻하고 느긋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모두 그 길 위에 서 있다. 누군가는 먼저이고, 누군가는 조금 나중일 뿐.

4. 〈더 파더〉를 통해 생각해볼 거리 – 기억이 사라질 때, 나는 누구인가

영화 〈더 파더〉는 단순한 치매 묘사를 넘어서, 기억과 정체성, 인간다움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흔히 자신을 ‘기억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내 이름, 내 과거,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 그 기억들이 쌓여 나를 만들고, 나는 그 기억을 토대로 살아간다. 그런데 만약 그 기억들이 하나씩 사라진다면, 나는 여전히 나일 수 있을까?

 

앤서니의 혼란은 단순한 병리 현상이 아니라, 존재의 기반이 무너지는 체험이다. 시간이 흘러도 그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고, 공간이 낯설고, 사람들의 얼굴이 뒤바뀌며, 사랑하는 딸조차 의심하게 되는 그 과정은 단지 ‘노쇠함’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비극적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 모든 과정을 감정적으로 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담백하게, 침착하게, 앤서니의 시선으로 ‘그 안쪽’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우리는 관찰자가 아니라, 함께 혼란을 겪는 체험자가 된다.

 

이 영화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기억이 사라질 때,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존엄을 지킬 수 있을까? 존엄은 단지 사회적 지위나 육체적 건강으로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차원에서, 내가 나라는 감각, 내가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감정이 사라질 때 과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인간다움을 이어갈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지 치매를 앓고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는 시간 앞에서 조금씩 잊고, 흐릿해지고, 낯설어지는 존재다. 〈더 파더〉는 그런 불가피한 ‘인간의 소멸 과정’을 정면으로 보여주며, 그 안에서 가장 오래 남는 것이 ‘감정’이라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낸다. 사람의 이름은 잊지만, 그 사람이 주었던 따뜻함은 기억하고, 날짜는 모르지만, 그 날 함께했던 기분은 어렴풋이 남아 있다. 그 감정이야말로 우리가 진짜로 붙들고 있어야 할 ‘기억의 본질’ 아닐까?

 

또한 이 영화는 치매 환자 자신뿐 아니라,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묻는다. 앤서니의 딸 앤은 아버지를 돌보며 끝없는 인내와 죄책감을 느낀다. 그녀 역시 삶을 살아가야 하고, 자기 인생을 꾸려야 하지만, 아버지를 두고 떠나야 하는 죄책감은 쉬이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이 장면은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는가?”

 

영화가 끝난 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부모가, 혹은 내가 기억을 잃기 시작할 때, 내가 붙들고 싶은 감정은 무엇일까? 그 순간에도 지켜주고 싶은 인간다움이 있다면, 지금 나는 그 감정을 충분히 표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더 파더〉는 ‘삶의 끝’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잊혀짐이라는 과정 속에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랑과 존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것은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