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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 사나운 땅의 사람들 (American Primeval, 2025, Netflix) -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의 진실과 생존

by 보부상C 2025. 4. 16.

사나운 땅의 사람들 (American Primeval, 2025, Netflix) - 19세기 서부 개척 시대의 진실과 생존 관련 사진

1. 19세기 중반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역사적 배경

1840년대부터 1860년대에 걸쳐 미국은 이른바 서부 개척 시대라 불리는 급격한 영토 팽창과 이주 러시를 겪었다. 이러한 팽창의 밑바탕에는 1845년경 등장한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이념이 있었는데, 이는 미국이 태평양까지 국토를 확장하는 것이 신의 뜻이자 필연적 운명이라는 믿음이었다. 실제로 1846~1848년의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 유타 등을 포함한 광대한 서부 영토를 획득하였고, 전쟁 직후 수많은 미국인 개척자들이 더 나은 삶과 기회를 찾아 서부로 발길을 돌렸다.

이들 개척자들은 광활한 대평원을 횡단해 오리건, 캘리포니아, 그리고 종교의 자유를 찾아 몰몬교도들이 정착한 유타에 이르는 장거리 육로(오리건 트레일, 캘리포니아 트레일, 몰몬 트레일 등)를 따라 이동했으며, 그 동기는 종교적 박해로부터의 도피, 값싼 농지 획득, 1849년 캘리포니아 골드 러시와 같은 일확천금의 기회 등 다양했다.

하지만 서부로 향한 여정과 정착 생활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장정에서 이들은 식수와 식량 부족, 전염병, 혹독한 기후 등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실제로 여행자 열 명 중 한 명이 그런 길 위에서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미개척지의 상당 부분은 법과 질서의 공백 지대로 남아 있어, 총기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천지나 다름없었다. 정착민들의 팽창은 곧 원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침범하는 일이었기에, 아메리카 원주민 여러 부족과의 마찰도 빈번했다. 연방 정부는 조약과 전쟁, 강제 이주 정책 등을 통해 원주민들을 점차 그들의 땅에서 몰아냈으며, 이렇게 벌어진 충돌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과 비극이 빚어졌다.

이러한 역사 속 한 단면으로, 19세기 중반 몰몬교 신도들의 서부 정착과 그로 인한 충돌을 들 수 있다. 1847년 지도자 브리검 영이 이끄는 몰몬교도들은 종교 박해를 피해 당시 멕시코령이던 유타 지역으로 이주하여 자신들만의 신정(神政) 공동체를 건설했다. 그러나 1857년, 유타 준주에 연방 정부의 통치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몰몬교 측이 강경히 저항하면서 마침내 무력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1857~1858년에 전개된 이 충돌을 유타 전쟁이라고 하는데, 몰몬 정착민과 미국 정부군이 맞선 이 분쟁은 대규모 전투 없이 긴장 상태로 이어졌으나, 그 와중에 1857년 9월 몰몬 민병대가 캘리포니아로 향하던 개척민 약 120명을 학살한 마운틴미도우 학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끔찍한 사건은 서부 개척 시대의 종교적·문화적 갈등이 얼마나 폭발적으로 분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 비극으로 역사에 남았다.

2. 사나운 땅의 사람들(American Primeval)에 비친 서부 개척 시대와 감상

American Primeval은 바로 이러한 1850년대 후반 서부 개척 시대를 배경으로, 당시의 격동을 다양한 인물 군상의 이야기로 풀어낸 넷플릭스 한정시리즈다. 특히 이 드라마는 1857년 유타 전쟁을 둘러싼 종교적 충돌과 서부 개척지의 주도권 다툼을 본격적으로 다루는데,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그 시대의 한 축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산악 사냥꾼 아이작 리드(테일러 키치 분)는 어린 시절 쇼쇼니족 원주민에게 길러진 백인으로서, 개척 시대에 백인과 원주민 문화가 교차하며 형성된 혼종적 정체성을 체현한다. 한편 남편을 살해하고 아들과 함께 달아난 지명 수배자 사라 롤(베티 길핀 분)은 폭력과 상실을 뒤로 하고 새 삶을 찾으려는 개척민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를 뒤쫓는 현상금 사냥꾼 버질 커터(제이 코트니 분) 일당은 법의 공백 속에서 잔혹하게 사익을 추구하는 당시 무법자의 단면을 드러낸다.

이와 더불어 드라마는 종교 공동체인 몰몬교도들과 원주민 부족의 시선을 균형 있게 비춘다. 신앙심 깊은 젊은 부부 제이콥 프랫(데인 드한 분)과 아비시 프랫(사우라 라이트풋-레온 분)은 새로운 터전을 찾아 서부로 이주한 몰몬교 개척자로서, 그들의 이야기는 신앙에 의지해 험난한 개척 생활을 견뎌내려 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낸다. 드라마에는 몰몬교 지도자 브리검 영(킴 코우츠 분)과 그의 민병대도 등장하는데, 이는 당대 몰몬교도들의 집단적 신념과 긴장된 역사적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쇼쇼니족 전사 레드 페더(데릭 힌키 분)는 서부 개척으로 터전을 침범당한 원주민의 분노와 저항을 대변하며, 그의 부족과 몰몬 민병대 사이의 충돌은 그 시대 문화적·종교적 갈등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개척 시대의 실존 인물인 짐 브리저(셰이 위검 분)가 교역 거점인 포트 브리저의 책임자로 등장하여, 극중 배경이 실제 역사와 맞닿아 있음을 일깨워준다.

American Primeval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거칠고도 음울하다. 광막한 서부의 풍경은 한편으로는 개척과 자유의 공간이지만 동시에 폭력과 무법이 난무하는 위험한 세계로 묘사되며, 인물들은 끊임없이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나는 극중 인물들이 마주하는 숨 막히는 긴장감과 위협을 통해 당시 개척 시대의 현실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듯한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1화에서 묘사되는 마운틴미도우 학살 장면은 이 드라마가 역사의 어두운 진실을 얼마나 직설적으로 보여주는지를 단적으로 드러내는데, 무고한 이들이 희생되는 처참한 광경은 그 시대 현실의 잔혹함을 보는 이에게 뼈저리게 전달한다.

3. 개인적인 감상 - 인간다움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여섯 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American Primeval은 미국 서부 개척사의 빛과 그림자를 생생히 담아낸다. 드라마를 관통하는 핵심 정서는 ‘생존’‘충돌’로 요약될 수 있는데, 각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다. 이를 통해 이 작품은 개척 시대를 지배했던 냉혹한 생존 현실과 폭력의 악순환을 그려내지만, 동시에 사라와 아이작, 데빈, 투 문스 등이 만들어가는 작은 공동체의 유대와 희망을 통해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다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나는 이 드라마를 시청하며 서부 개척 시대가 단순한 개척 영웅담이 아니라, 신념과 탐욕, 광기와 비극이 뒤얽힌 복잡한 역사였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가상의 서사 속 인물들의 투쟁과 성장을 지켜보며, 그 배경이 된 실제 역사 속 사람들의 고뇌와 용기에까지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아이작이 더 이상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정체성에 괴로워하면서도, 결국 아이와 사라를 지키기 위해 총을 들고 맞서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에서 나는 단순히 “선과 악”이 아니라, 생존의 윤리와 도덕적 회색지대에서 길을 찾으려는 한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보았다. American Primeval은 그런 순간들을 통해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인간다움은 문명인가, 연민인가, 아니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본능인가?

흥미로운 건,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희망’은 거창하거나 영웅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사라가 아들과 손을 맞잡고 피난처를 향해 걸어가는 마지막 장면은 그저 한 가족의 뒷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그 안엔 말로 다할 수 없는 회복의 가능성과, 다시 살아가려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나는 이 작품의 가장 강력한 메시지라고 느꼈다 — 인간은 본능적으로 서로를 필요로 하며, 관계 속에서만 완전히 붕괴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역사는 언제나 승자 중심의 기록이지만, American Primeval은 그러한 거대한 서사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들은 영웅도, 악당도 아닌, 그저 살아남고자 했던 평범한 존재들이다. 나는 그 점이 너무나 좋았고, 동시에 마음 아팠다. 우리가 잊고 있던, 역사의 틈새에서 묻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어 되새김질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드라마는 단순한 서부극을 넘어선 깊이를 지녔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