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스포일러 포함 줄거리 요약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2022)는 중년의 평범한 여성 '에블린 왕'의 삶에서 출발한다. 그녀는 세탁소를 운영하며 밀린 세금 문제로 국세청과 실랑이를 벌이고, 남편 웨이먼드는 조용히 이혼 서류를 준비하고 있으며, 딸 조이는 커밍아웃 문제로 갈등 중이다. 이런 복잡한 일상 가운데, 갑자기 '멀티버스'가 열리며 에블린은 다른 우주의 자신들과 연결되는 능력을 얻게 된다. 영화는 황당무계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그 중심에는 가족, 자아, 존재의 의미에 대한 깊은 질문이 담겨 있다.
수많은 우주 속에서 에블린은 때로는 셰프이기도, 영화배우이기도 하며, 심지어 손이 핫도그인 세계에서도 살아간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딸 조이의 또 다른 자아인 ‘잡주 투파키’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공허 ‘모든 것 베이글’을 창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공허는 삶의 무의미함을 상징한다. 에블린은 무수한 자신들과 조우하며, 결국 ‘지금 이 삶’이야말로 가장 소중하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리고 조이에게 말한다. “나는 네가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이든, 너의 곁에 있을 거야.” 이 영화는 다중우주 속에서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서로를 선택하는 일이라는 걸 보여준다.
2. 인상 깊었던 장면
수많은 기괴하고 유쾌한 장면들 사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위 우주’였다. 생명이 존재할 수 없어 단지 바위로만 존재하는 그곳에서, 에블린과 조이는 말이 아닌 자막으로 대화를 나눈다. 조이는 말한다. “어차피 아무것도 의미 없어.” 에블린은 대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함께 있고 싶어.” 이 단순한 대화는 영화 전체의 철학을 응축한다. 삶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선택하는 그 순간은, 우주의 어떤 의미보다 더 강력하다.
바위로 존재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지만, 함께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그 어떤 이론이나 액션보다 이 침묵의 장면이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사랑은 완벽한 이해도, 조건도 필요 없이 곁에 머무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이 장면은 ‘사랑’이야말로 허무를 이기는 가장 작은 힘이자, 가장 위대한 선택이라는 것을 조용히 말해준다.
3. 개인 감상평 ― 허무 속에서도 손을 잡는 사람들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나는 멀티버스를 단지 SF적 상상력의 산물로 여겼다. 그러나 이 영화는 멀티버스를 통해 삶의 본질을 정면으로 묻는다. 수많은 삶,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지금 내가 선택한 이 삶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영화는 그 모든 질문에 “지금 네 옆에 있는 사람을 붙드는 것”이 그 해답일 수 있다고 말한다. 삶은 실패의 연속이고, 후회와 실수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손을 놓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 가치 있는 일이다.
에블린과 조이, 웨이먼드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들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때론 상처를 주지만, 끝끝내 함께하고자 한다. 이 영화는 “사랑은 이해하지 못해도 머무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건 우리 모두가 살아가면서 반복해서 배우는 진리이기도 하다. 복잡하고 어지러운 삶 속에서도 누군가의 손을 잡는 그 순간만큼은, 허무도 공허도 우리를 집어삼키지 못한다.
더불어 이 영화는 “만약에”라는 질문으로 우리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게 만든다. 만약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만약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였다면? 그런데 그 수많은 가정들 속에서도 결국 돌아오게 되는 건 ‘지금 여기’의 나,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이다. 이 깨달음은 굉장히 인간적이면서도 위안이 된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고, 지금의 내가 부족해도 괜찮다는 메시지가 진하게 전달된다.
특히 웨이먼드의 태도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 그는 겉으로 보기엔 나약하고 소심해 보이지만, 사실은 사랑과 친절로 세상을 바꾸는 강한 사람이다. 에블린의 복잡한 감정 속에서 웨이먼드는 변하지 않고 묵묵히 함께하며, 결국 그녀를 일으킨다. 이 장면은 우리 모두가 내면에 품고 있는 ‘착한 사람 콤플렉스’와 ‘사랑의 표현 방식’에 대한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4.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통해 생각해볼 거리
이 영화는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는다. 단순히 이야기 구조나 영상미 때문이 아니다.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이 우리의 삶을 곱씹게 만들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남는 질문은 ‘선택과 후회’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매일같이 선택하고, 때로는 후회한다. ‘그때 그 길을 택했더라면’이라는 생각은 누구나 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말한다. “지금 내가 이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 말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도 우리가 현재를 사랑해야 할 이유를 알려준다.
두 번째는 ‘진짜 관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부모와 자식, 연인, 친구. 우리는 서로를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관계는 이어진다. 이 영화는 ‘완전한 이해 없이도 진정한 사랑은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사랑의 본질은 곁에 머무르는 의지에 있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완벽한 타인에게 무조건적인 수용을 바라는 대신, 그 사람의 복잡성과 결함을 그대로 껴안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 이는 우리 삶의 거의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진리다.
세 번째로 떠오른 질문은 ‘나는 어떤 우주의 나로 살아가고 싶은가’이다. 영화 속 멀티버스는 단지 세계관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가능성에 대한 은유다. 그 중 어떤 삶은 성공했을 수도 있고, 어떤 삶은 사랑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의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이다. 무수한 갈래 중 ‘이 삶’을 선택했다는 건 곧 책임이고, 의지이며, 사랑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화려한 멀티버스를 통해 우리를 외부로 끌어내는 것 같지만, 결국 가장 깊은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지닌다. 삶의 의미는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쩌면, 그저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 단순하고 작지만 무거운 메시지는, 허무와 무기력 속에서도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5. 비슷한 감정선의 영화 추천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주는 감동에 깊이 공감했다면, 다음 영화들도 꼭 추천하고 싶다. 이 작품들 역시 현실과 환상, 자아와 관계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 <소울> (2020): 삶의 목적을 찾는 여정을 그린 픽사의 철학적 애니메이션. 죽음 이후를 상상하며, 현재를 더 소중히 바라보게 만든다.
- <그녀> (Her, 2013):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 외로움과 감정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게 만드는 영화.
- <미나리> (2020):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이민 가족의 이야기. 가족과 생존, 뿌리의 의미를 조용하게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 <이터널 선샤인> (2004): 기억을 지워버리는 연인들의 이야기. 사랑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얼마나 쉽게 잊고 또 얼마나 오래 그리워하는지를 보여준다.
- <코다> (2021): 청각장애 가족 속 유일한 청인의 성장 이야기. 다름과 소통, 사랑의 실천에 대해 따뜻하게 풀어낸다.
이 영화는 단지 눈과 귀를 자극하는 SF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가장 유쾌하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던진, 진심 어린 러브레터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와 함께 있고 싶어.”
그 말 한마디면, 어쩌면 우리는 오늘 하루도 잘 살아낸 셈 아닐까?